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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사고파는 가게 – 망각과 소유의 경계에서

by 다정한은하맘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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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오래된 골목 어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문 하나가 있다. 특별한 간판도, 화려한 조명도 없지만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목적이 분명하다. 이곳은 '기억을 사고파는 가게'다. 누구나 한두 개쯤은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다. 상실, 실패, 혹은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이 가게는 그런 기억을 일정한 대가를 받고 구매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따뜻했던 추억, 벅찼던 순간들도 일정한 조건 하에 ‘소유’할 수 있다.

나는 이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기억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냄새, 감정, 촉감, 그리고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관까지도 함께 녹아 있다. 매일 수십 명의 기억을 접하다 보면, 타인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기쁨과 슬픔, 후회와 집착이 얽힌 장면들이 때로는 내 감정과 뒤섞여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억을 팔고 나서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한결 가벼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기억을 지운다는 건 과연 진정한 치유일까? 아니면 고통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일까? 반대로, 타인의 기억을 가져온다는 건 그 사람의 삶 일부를 침범하는 건 아닐까?

'기억'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거래한다는 이 비현실적인 공간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잊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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